우리 센터는 노인장기요양기관 종사자가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충에 귀기울이겠습니다.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살림했어요.”
“어르신 돌보는 일을 해요.”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누군가에게는 직업으로 존중받지 못 할 때가 있는 나의 일,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빛나는 내 일의 역사를 스스로 써보는 시간!
올해 여성노동인권교육에서는 ‘내가 쓰는 내 일의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돌봄노동자인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역사를 직접 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글쓰기’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 자신과의 대화 더 나아가 타인, 사회와의 대화도 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몸풀기를 하듯이 부담감, 어색함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도록 가볍게 내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고, 목록쓰기를 했어요. 이번 과정에 왜 참여하게 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의지를 다지며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돌봄이 노동이라고?
사랑으로 돌본다. 정성으로 돌본다. 딸처럼, 며느리처럼 돌봐드린다.
사랑과 헌신, 숭고함과 ‘돌봄’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지만, 아직도 ‘돌봄’이 ‘노동’이라는 말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돌봄’은 ‘노동’입니다. ‘여성’이니까, ‘딸’이니까 ‘그냥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누구나 배워야 할 가치가 있는 일’, ‘제대로 일하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 일’, ‘정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돌봄노동현장은 돌봄노동자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도 불안정한 고용관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튿날 일이 생겼다. 그날도 출근하니 싱크대 상황은 전날과 비슷한 상태였고 설거지를 끝낸 후 청소를 마쳤다. 정리를 다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침대를 청소하란다.
"아닙니다. 남편분은 건강하고 혼자 할 수 있어 어르신 것만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센터장한테 말하지“
시간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센터장한테 전화가 왔다. "샘, 그 집에서 오지 말래요." 한다. 어이없었다.
(박경순, 일하면서 불편했던 순간)
봉사도 하는데 월급도 준단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돌봄에 도전한 곳은 구립노인 전문 요양원이었다. 처음 시작된 장기요양보험제도의 현장을 ‘꿈의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신기한 물품이 하나 둘 씩 들어오면 씻고 닦아서 정리 정돈을 하였다. 반갑게 한분 두분 입소를 하시면 방 배정을 도와서 내 집처럼 생활하실 수 있도록 안내했다. ‘거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어르신이 하루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실 때 얼마나 답답하실까?’ 생각했다. 영화에 나오는 원더우먼처럼 휠체어 중에 180도로 젖혀지는 침대 휠체어로 모시고 효창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정원으로 모셔서 잘 가꾸어진 화단에 핀 가지, 상추, 고추, 호박도 보여드리고 다양하게 핀 꽃들도 알려드리며 동요도 불러드리고 동화책도 읽어 드렸다.
추억이 된 그 시절은 내가 꿈꾸던 돌봄을 현실로 하루하루를 보람과 긍지로 생활했더니 편도 한 시간씩 걸리는 출퇴근도, 3교대 근무도 피곤한 줄 몰랐다.
눈 한번 깜박, 어느새 세월은 흘러 1년의 계약 종료로 퇴직을 권유받았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 비춰진 모습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그래, 이곳이 아니라도 또 다른 세계에 들어가보자. 또 재미있는 세계가 펼쳐질 거야’라는 생각이 드니 더이상 초라하지도 작아지지도 않았다.
(조우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요양보호사는, 사회복지사는 어르신 곁을 지킵니다.
같은 일을 해 온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공감의 힘으로 돌봄 일이 가진 기쁨과 슬픔, 그리고 이 일의 보람, 이 일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더 자유롭게 더 풍요롭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일이 나를 먹이고 일으켜 세워 마침내 다시 살게 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쓰레기 더미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굴 속 같은 집도 있다. 똥오줌 싼 기저귀 반드시 청소포로 재활용하라고 요구하는 Y님 같이 강박과 치매로 고통받는 분을 볼 때의 슬픔은, 눈을 꿈쩍 하시면서 ‘이따가 혼자 먹어’하고 종이에 싼 과자 한 알 얻는 기쁨으로 상쇄된다.
다 당신 덕분이다. 아프고, 병들고, 늙고, 가난하고 외로운 당신. 쓸쓸하고 견디는 당신. 그래서 씩씩하고 아름다운. 또한 그 곁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저 지키고 보살피는 당신 덕분이다. 그러므로 서로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늙고 아프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다. 그때가 오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되기를. 참외 한 알 가방에 쑥 넣어주는 다정함으로 내내 서로 보살펴 주기를.
(김태정, 참외효과)
돌봄을 여자들이 집 안에서 했던 쉬운 일이라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며 돌봄노동자들도 감정을 가진 누군가의 부모이며, 돌봄노동자가 핵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노동자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배석순, 돌봄노동자로서 세상에 하고 싶은 한마디)